대가천의 맑은 물과 주변 계곡의 기암괴석, 수목이 절경을 이루어 조선시대 성주가 낳은 대유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이 죽국 남송시대 주희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7언절구의 시를 지어 노래한 곳으로 경관이 아주 빼어나 행락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입니다.

성수군에는 1~5곡만있고 김천시에 6~9곡이 있습니다.

1곡 – 봉비암, 2곡 – 한강대, 3곡 – 배바위, 4곡 – 선바위, 5곡 - 사인암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성주 읍성 서문 밖에 만들어진 숲으로 조선 중기 서문 밖의 어린 아이들이 이유없이 죽자 풍수지리설을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성밖 숲에는 나이가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 59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왕버들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으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지리,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만들어진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향토성, 민속성, 역사성 등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댐을 끼고 도는 길이 약 7㎞의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며, 성주호 주변에 수몰지역의 문화재를 이건한 영모재·구강재(경북문화재자료 280)와 운봉 현광호를 기리기 위해 세운 백운정을 비롯해 가야산·독용산성(경북기념물 105) 등이 있다. 성주 버스정류소에서 가천 경유 성주댐행 버스가 운행됩니다.

각 태실은 지하에 석실을 만들어 그 속에 태항과 태주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을 넣고 지상에는 기단·간석·옥개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어느 왕자의 태실이라는 표석을 세웠습니다. 기단이 일석이고 간석·옥개도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기단면석부와 옥개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옥개 뒤에는 보주형 꼭지를 조출하였습니다. 이 곳 태봉은 뛰어난 명당으로 세종대왕의 왕자의 태실을 모아 봉안하였습니다.

조선 세종대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처음 입향하여 개척한 마을로 성산이씨 집성마을입니다. 응와 이원조, 한주 이진상 등 인물들이 배출된 곳입니다. 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영취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청룡등과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백호등의 중앙에 형성된 낮은 구릉에 남에서 북으로 차차 올라가는 경사지를 따라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백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가야의 옛 무덤인 성산동 고분군은 성산가야의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야트막한 언덕인 성산 자락을 따라 130여 기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데 위로 오르면 성주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지금의 성주가 옛날에도 이 지역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무덤들이 자리하는 연유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일제 때 큰 무덤 몇 기가 일본인에 의하여 발굴된 적이 있으나, 본격적인 발굴은 1980년대 중반 대구 계명대학교 발굴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금강산을 빼닮아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남산제일봉으로 가는 길에는 기암괴석 절경을 여러 차례 만날 수 있습니다. 또, 군데군데 놓인 철계단 옆으로 빠져나와 짧은 암릉 구간을 경험할 수 있고, 천년고찰 청량사도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바위군 사이사이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살아남은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12대 명산’, ‘조선8경의 하나’라고 불리는 뛰어난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가야산은 해인사나 백운동 들머리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팔만대장경을 봉인하고 있는 법보사찰 해인사를 찬찬히 둘러 본 다음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가야산 정상 상왕봉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해인사에서 상왕봉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해인사를 지난 뒤 극락골과 토신골로 갈라지는 길에서 극락골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입상을 볼 수 있습니다.

상왕봉에서 200~300m쯤 떨어진 칠불봉을 거쳐 올라간 길을 되짚어 하산하거나 백운사지를 거쳐 용기골로 내려와 백운동에 이르는 길이 일반적인 코스이며 백운동에서 출발하여 상왕봉을 거쳐 해인사로 하산할 수도 있습니다.